몇시간? 몇일? 몇년?
순간인지 억겹인지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그는 어둠 속에서 있어야 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로드 엘레파스...로드 엘레파스?"
엘레파스? 그는 누군가?
기억이 어렴풋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깨닫는다.
...바로 그가 엘레파스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감각들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피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한다.
그리고 기억들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비참한 패배와 죽음에 대한 기억이..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온다.
"로드 엘레파스!"
그리고 그는 다시 돌아왔다.
계승자 엘레파스로써!
'죽음' 속에서 다시 느끼게 된 오감에 카오스 신께 감사드리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겁없는 스카웃 마린들의 목을 비틀고 칼로 토막내며 느껴지는 생생한 현실에 환희하는 엘레파스
그런 그를 향해 비열한 네로스가 이죽거린다.
"갑자기 감상적으로라도 변하신 듯 합니다? 로_드 엘레파스 경?"
엘레파스는 네로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자신이 디오메데스에게 죽었던 순간, 최후의 전투를 앞두고 감히 도주했던 비열한 카오스 소서러의 얼굴을..
그리고 그는 깨닫는다.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음을..
자신이 죽기 전의 과거로!
그는 타이푼 행성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운명대로라면 머지 않은 시간에 그는 데비안 툴과 크게 싸울 것이고, 그와의 싸움에서 큰 부상을 입은 채로 홀로 디오메데스 일당과 싸우게 된다그리고..
그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카오스 신들의 장난인지
아니면 죽어가는 자신이 꾸는 마지막 백일몽인지 분간할 수 없으나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살아있다.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감각을 확인한다.
이것은 분명 진짜였다.
카오스 신들의 장난인지 무슨 조화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시 한번 얻은 삶과 삶의 감각에 그는 이전과 다른 절박함과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다짐한다.
절대로 살아남으리라..!
엘레파스가 말한다.
"날 따르게 네로스 형제여..
죽여야 할 '오랜 적'이 생각났으니..하하"
운명을 바꾸지 못하면 결국 똑같이 죽어 무의 공간에 떨어지고 말리라..
절박한 엘레파스의 눈 앞에 볼품없이 쓰러진 죽어가는 카오스 마린이 보인다.
그는 그를 잘 알고 있다.
카오스 마린, 케인
이전, 그러니까 자신이 죽었던 '과거'의 전투에서 그는 쓰러진 케인을 비웃으며 쓰레기처럼 버렸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덕분에 그는 소중한 전사 한명을 잃게 되었고
덕분에 디오메데스의 손에 죽게 되었다.
죽어가는 케인 앞에서 그는 손수 카오스의 힘으로 그를 되살리며 말한다.
"일어나라 케인.
죽지 않은 이상 아직 너는 나의 종이다.
나약하게 죽고싶지 않거들랑 카오스 신들에게 기도하며 다시 한번 싸워라!"
그리고 등장한 스페이스 마린들
그가 철저히 뇌리에 새긴 기억 속, 똑같은 장소
똑같은 포효성과 함께 등장한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그들 중 몇몇은 엘레파스의 검이 아닌, 케인의 플라즈마 건에 맞아 흔적도 없이 산화되었다.
그때 네로스가 이죽거린다.
"당신이 저따위 놈을 살리느라 시간을 낭비한 덕에 놈들에게 발목을 잡히게 된 듯 하군요?"
이전과 같았으면 그에게 고함을 쳤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엘레파스가 말한다.
"조금은 인내심을 갖도록 하게 네로스. 적을 죽일때마다 우리는 어둠의 신들에게 경배를 바치는 것이 되는 것이니..
이대로 나를 따르게나!"
그리고 그는 네로스와 케인을 이끌고 거침없이 어디론가로 향한다.
그곳은 카오스 성소의 흔적이 있는 공터였다.
과거의 전투에서는 최후에 가서야 그 위치를 알아냈지만
지금은 과거의 모든 기억을 알고 있기에 그저 기억대로 향하면 될 일이였다.
그리고 역시 과거의 기억대로 카오스 성소는 정확한 장소에 위치해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형제들"
수많은 컬티스트들을 소환하여 인도하는 엘레파스
이전 전투에서 그는 홀로 싸웠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제는 운명을 바꿀 차례다.
오크들이 보인다.
과거였더라면 매복한 오크들과 오크들의 포탑 사격에 그나마 소수였던 카오스 마린들이 큰 피해를 입었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는 기억대로 우회하여 오크들을 습격했고..
결과는 그가 바라던 대로였다.
거침없이 전진하는 엘레파스 일행
엘레파스는 강렬한 확신을 느낀다.
운명을 바꾸리라는 확신.
도중에 벽이 무너지며 터미네이터 아머를 입은 자신만큼이나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블러드 레이븐의 터미네이터들이 나타난다.
과거였더라면 자신이 몸을 사린 덕에 그들의 손에 남아있던 마린들이 모두 사망하고
자신과 네로스만이 남았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 그는 부하들을 앞으로 내세우기보다는
목숨을 걸고 싸우기로 결정한다.
수많은 컬티스트들과 하복 마린들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그대로 달려드는 엘레파스
"죽어라!!"
그리고 치열한 싸움 끝에 그가 승리한다.
점차 가까워지는 운명의 장소
그리고 마침내 마주하는..
운명의 적
데비안 툴!
과거였더라면 그는 여기서 자신에게 큰 부상을 입히고 전사하고
네로스는 직후 도망가며
마지막으로 증오스러운 디오메데스 일당이 다가와 그에게 죽음을 선사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수많은 카오스의 졸개들이 그의 아래 놓여있다!
운명은 이미 바뀌었다.
바뀐 운명에 대한 확신을 품은 채 엘레파스가 말한다.
"보아라 형제들이여!
황제의 종으로써 살 뿐인 비참한 스페이스 마린 놈들에게 주어진 선택지의 폭이 얼마나 좁은지를!
너는 오늘 나에게 죽을 것이다!"
데비안 툴이 차가운 기계음으로 답한다.
"그건 네놈이 될 것이다."
마침내 시작된 전투.
수많은 컬티스트들을 선봉으로 두고, 카오스 마린들이 후방에서 총탄을 쏟아낸다.
그러나 데비안 툴은 결코 쉽지 않은 자..
역시 엘레파스가 직접 나서야만 처리될 자였다.
그만큼 무서운 자다.
엘레파스가 데비안 툴이 내뿜는 화염 방사기 화염을 가르며 달려든다.
드레드노트 데비안 툴의 강력한 주먹과 그의 검이 맞부딛친다.
"넌 오늘 여기서 죽는다."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일 뿐이지, 툴.
네 녀석의 영혼이 혼돈의 힘에 붙잡히게 된다면 깨닫게 될꺼다."
치열한 싸움 끝에..
마침내 툴이 전사한다.
"황제 폐하께서 굽어 살피시길.."
불타는 드레드노트를 바라보며
희열에 찬 엘레파스가 한껏 조롱한다.
"데비안, 그는 자네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네."
어디선가 함성이 들려온다.
아마 디오메데스 일행이리라..
과거였더라면 아무도 없고, 오직 크게 부상당한 자신만이 홀로 그들과 대적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수많은 컬티스트들
네로스와 케인을 비롯한 카오스 마린 졸개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뀐 운명에 대한 확신을 가진 엘레파스가 굳건하게 서 있다!
마침내 보이는 디오메데스 일행들을 향해 엘레파스가 포효한다.
"거짓 황제에게 죽음을!"
모두 다 처리된 후..
그는 여전히 살아있다!
바뀐 운명에 대한 환희와 흥분 속에 숨을 고르고 있던 엘레파스에게 갑자기 압도적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절로 무릎을 꿇게 만드는 목소리
"데비안 툴은 황제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겠지만 네놈은 내 목소리를 듣게 되었구나."
"아 아바돈님! 서 설마 당신일리가 없어!"
압도적인 공포에 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엘레파스가 그의 다음 대답을 기다린다.
"왜 그러길 바라는거냐? 난 블랙 리젼의 군주이자 워마스터 아니던가?
그런 내가 마법의 힘으로 언제 어디서든 네놈 따위 파리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어린아이 손목 비트는 것보다 쉽다."
"너는 내 권속아래 있다 얼간아!
설마 우리 계약을 잊은 건 아니겠지?"
잊을리가
워드 베어러로써 패배하여 고통의 성당에 처박힐 운명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대신
그를 노예를 만들어 버린 그 계약을..
엘레파스가 애써 침착하게 말한다.
"물론입니다 아바돈 각하. 어떻게 잊겠습니까? 데비안 툴은 그의 '아우렐리아의 영웅' 놈들과 함께 모두 도살당했습니다."
만족했는지, 아바돈의 목소리는 흩어져가기 시작한다.
흩어져가는 목소리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경고한다.
" 계약을 지켜라 엘레파스..
내가 네로쓰를 보낸 이유도 거기에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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